[225호-12면] 이정현 방송법 판결, 그 역사적 의미
[225호-12면] 이정현 방송법 판결, 그 역사적 의미
  • 전국언론노조 KBS본부
  • 승인 2019.01.03 0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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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의원 이정현, 정확하게는 박근혜 대통령비서실 홍보수석비서관의 방송법 위반 판결을 왜 ‘역사적 판결’이라고 하는 것일까. 많은 언론과 저널리즘 전문가들은 사실상 사문화됐던 현행 방송법의 처벌 조항이 31년 만에 처음으로 적용됐다며 큰 의미를 부여했다. 

 

이정현의 변호인도 이 부분을 강조하며 변론했다. 이정현 측은 “31년 이상 한 번도 적용된 적이 없고 의미도 애매한 법률조항 위반으로 기소하여 현역 국회의원을 처벌하는 것은 정치적 반대파 죽이기에 이용될 수 있는...”이라며 무죄를 주장했다.

 

하지만 재판부는 방송법 ‘4조 2항’을 무겁게 받아들였고, 명쾌하고 빈틈없는 논리로 ‘징역 1년 – 집행유예 2년’의 유죄 판결을 내렸다. 그야말로 역사적 판결이다. 그렇다면 4조2항은 무엇인지, 그 시작과 변천을 살펴본다.

 

 

‘31년’이 아니라 ‘54년’ 만에 첫 판결

 

 

방송법 연혁

 

1964년 방송법

1973년 KBS 창립

1980년 방송법 폐지 => 언론기본법 제정

1987년 언론기본법 폐지 => 방송법 부활

2000년 (통합)방송법~

 

 

 

현재 방송법 제4조 2항은 “누구든지 방송편성에 관하여 이 법 또는 다른 법률에 의하지 아니하고는 어떠한 규제나 간섭도 할 수 없다”고 규정하고 있다. 그리고 이를 위반하면 ‘2년 이하 징역 또는 3천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벌칙 조항을 두고 있다.

 

이 법이 제정된 것은 1987년. 민주화의 열기로 성난 시민들이 서울광장을 가득 메우자 군부독재 5공화국은 6.29 선언으로 몸을 바짝 낮추었다. 이어 국민투표에 의해 10월29일 개정 헌법이 공포되고, 12월31일 언론기본법이 폐지됐다. 5공화국의 언론 통폐합 정책을 뒷받침했던 이 언론기본법이 폐지되면서 동시에 제정된 법률이 ‘방송법’과 ‘정기간행물 등록법’이다. 

‘31년 만에 첫 적용’이란 바로 이 87년 방송법을 기준으로 삼은 것이다. 2000년 일명 ‘통합방송법’이란 이름으로 한차례 큰 변화를 겪었고 수많은 개정이 있었지만, 현재 방송법의 모태는 87년 방송법이다.  하지만 엄격하게 얘기하면 87년 방송법은 부활된, 즉 다시 제정된 것이다. 그 출발은 1964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927년 라디오 전파를 송출하며 시작된 한국의 방송은 일제 강점기와 미군정을 겪으며 조금씩 그 영역을 넓혀왔지만, 아직 온전한 ‘언론’으로서 자리매김 하지는 못했다. 첫 전파 이후 방송이 제대로 된 법적 위지를 획득하기까지는 한참 더 시간이 걸렸다. 전파관리법의 적용을 받던 방송은 1964년이 되어서야 ‘방송법’이 제정되며 독립된 언론으로 대접을 받게 된다. 이때 처음으로 ‘방송의 자유’라는 표현이 법률에 명시됐다.

 

 

 

1964년 방송법

 

제3조 (방송의 자유) 방송순서의 편성에 있어서는 

이 법 또는 다른 법률에 특별한 규정이 없는 한 

누구든지 어떠한 간섭이나 규제를 하지 못한다.

 

제21조 (벌칙) ①다음 각 호의 1에 해당하는 자는

 5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1. 제3조의 규정에 위반한 자

 

 

 

이정현을 유죄로 다스린 현재 방송법 4조2항의 시작은 바로 이 1964년에 제정된 방송법 제3조다. 이 조항은 “방송순서의 편성에 있어서는~누구든지 어떠한 간섭이나 규제를 하지 못한다”고 처음으로 ‘방송의 자유’를 천명했고, 그 벌칙 조항도 두었다. 지금은 ‘징역 2년 또는 벌금 3천’이지만 첫 방송법에서는 ‘5만 원 이하의 벌금’이었다.

 

또 초기 방송법에서는 방송의 자유를 ‘방송 순서의 편성’으로 기술하고 있지만, 그 입법취지가 단지 ‘순서’를 정하는 자유라기 보다는 방송의 종류나 내용, 분량, 그리고 그 배열에 이르기까지 방송 전반을 일컫는다고 해석하는 것이 타당해 보인다.

 

이후 1973년 ‘방송의 자유’ 조항은 그대로 유지된 채 벌칙은 ‘벌금 100만 원’으로 상향됐다. 

 

따라서 비록 징역형이 아닌 ‘벌금형’이지만 방송 자유에 대한 처벌 조항이 처음 만들어진 것은 1964년 첫 방송법이며, 이 조항으로 법원이 유죄 판결을 내린 것도 ‘31년’만이 아니라 ‘54년’만이다. 

 

방송법은 전두환이 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1980년 폐지되며 언론기본법으로 대체되었다가 1987년 부활했다. (언론기본법에서도 ‘방송순서 편성의 자유’는 명목적으로 유지했으며 그 벌칙으로 100만 원 이하의 벌칙 조항을 뒀다.)

 

87년 방송법은 64년 방송법의 기조를 이어받으면서 보다 포괄적으로 ‘방송의 자유’를 보장했다. ‘방송순서의 편성’을 ‘방송순서의 편성·제작이나 방송국의 운영’으로 넓혔고, 벌금형에 그친 벌칙을 ‘1년 이하 징역 또는 500만 원 이하 벌금’으로 대폭 강화시켰다.

 

이후 1990년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2천만 원 이하의 벌금’으로 개정됐고, 2000년 ‘(통합)방송법’에서 벌칙이 더 강화되면서 현재와 같은 ‘ 2년 이하의 징역 또는 3천만 원 이하의 벌금’이 됐다.

 

 

 

‘방송의 자유’ 벌칙 조항 연혁

 

1964년 ‘5만 원 이하의 벌금’ 

=> 1973년 ‘100만 원 이하의 벌금’ 

=> 1987년 ‘1년 이하 징역 또는 500만 원 이하 벌금’ 

=> 1990년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2천만 원 이하의 벌금’

=>2000년 ‘2년 이하의 징역 또는 3천만 원 이하의 벌금’ 

 

 

 

이처럼 방송법의 연혁을 찬찬히 살펴보면 이정현 유죄 판결이 얼마나 값어치가 있는 것인지 새삼스럽다. 아울러 권력은 망각을 강요했고, 망각은 관습화되었으며, 그로인해 정의가 너무나 오랫동안 지연돼 왔음을 깨달으며 화들짝 놀라게 된다. 

 

마지막으로 오연수 판사의 판결문을 한 구절을 더 인용한다.

 

 

 

  “상당한 기간이 지나도록 이 조항 위반을 이유로 기소되거나 처벌된 경우가 전무하였는데, 이는 아무도 이 조항을 위반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이 사건에서 보는 바와 같이 국가권력이 언제든지 쉽게 방송관계자를 접촉하여 자신들이 원하는 바를 요구함으로써 방송편성에 영향을 미쳐왔음에도 이를 관행 정도로 치부하거나 나아가 이를 본연의 업무수행으로 여기기까지 하는 왜곡된 인식이 만연해 있었기 때문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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